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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말씀

서로 섬기라 갈6:1-5

작성자
이 주신
작성일
2023-02-16 10:02
조회
560
자신이 경험적으로 보고들은 것만이 전부인줄 아는 사람을 가리켜 거듭나지 못한 도마형 인간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도마는 의심 많은 회의주의자였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보지 않고는 믿을 수가 없다고 말한 사람입니다. 이 도마에게 나타나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에 오셨다 죄 가운데 빠져 죽었던 인류를 구원하시려고 오셨습니다. 고난을 당하시고 마침내 인간의 죗값을 대신하여 십자가에 죽임을 받으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죽은 지 삼일 만에 성경대로 부활하셨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여러 차례 나타나셨습니다. 그런데 도마는 의심을 하셨습니다. 그는 직접 예수님의의 옆구리에 손을 넣어서 창에 찔린 흔적을 확인하지 않고서는 부활을 믿지 못하겠다는 사람이었습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 아무리 설명해도 자신의 생각을 넘어서면 용납하지 못하는 도마형 인간으로 넘쳐나고 있는 이 때 자신의 눈과 귀를 넘어서는 통합적 사고가 절실히 필요한 시기인 것 같습니다.

우리는 그 해답의 실마리를 헬렌 켈러에게서 찾을 수 있습니다. 그녀는 태어난 지 20개월 만에 뇌막염으로 시력과 청력을 잃고 말도 하지 못하는 삼중 장애자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녀로 하여금 보지도 듣지도 못한 세계를 이해할 수 있도록 다리를 놓아 준 것은 튼실한 상상력과 부단한 훈련이었습니다.

그녀는 피아노 위에 손을 얹고 진동을 느끼면서 소리를 들었다 마루판의 진동을 발로 감지하고 공기의 움직임을 느낌으로 무용수들의 춤을 볼 수 있었습니다.

마찬가지로 나와 연결된 세상의 불신과 갈등을 치유하는 통합적 사고에 이르는 길은 바로 육신의 눈과 귀를 넘어서서 믿음의 눈으로 그려보고 생각는데 있습니다.

이를 위해서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파편적인 지식과 경험의 옷들을 벗어버리고 도마형 인간을 이해할 때까지 믿음의 눈으로 그려보고 생각할 수 있도록 자신을 훈련시켜야 합니다.

훈련을 통한 통합적 사고의 기준점은 첫째 사회와 이웃에게 진정으로 유익한가. 둘째 그 유익이 조화를 이루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섬김과 봉사는 좋은 덕목이지만 깊은 감사가 없는 섬김은 공로주의자로 전락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먼저 깊이 있는 섬김과 감사로 연결된 이웃의 상처를 아우르고 불신을 치유하기를 힘써야 할 것입니다.

1.섬김은 온유한 심령으로 바로 잡아주는 것입니다

잘못된 것을 바로 잡아주되 재판하는 자세가 아닌 온유한 심령으로 바로 잡아 주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온유한 심령이란 말은 따뜻한 마음과 사랑하는 자세를 의미합니다. 다른 사람의 잘못한 것을 대할 때 멸시나 경계하는 자세가 아닌 부드러운 마음으로 바로잡아 주어야 합니다. 이것이 올바른 섬김입니다.

베드로의 많은 실수에도 예수님은 그를 한 번도 정죄하시거나 심판하지 않으셨습니다. 그가 나중에 자신의 죄를 깨닫고 회개할 때 사랑으로 품고 어루만져 치유하셨습니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이 질문은 베드로의 아픈 상처를 치료하시는 온유하신 주님의 음성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간음하다 현장에서 붙잡힌 그녀를 향해서 돌을 들고 달려드는 심판자들에게 죄 없는 자가 치라고 하셨습니다. 그러자 사람들은 슬그머니 하나 둘씩 모두 사라졌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다시는 죄를 짓지 말라” 경계하시며 그녀를 보내셨습니다.

2.섬김은 나 자신도 시험을 받을까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남의 허물과 죄악을 비판하고 정죄하는 행위는 나는 저 사람과 같지 않다는 생각 속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경고하십니다. 혹시 나 자신도 그런 사람 아닌가를 돌아보라는 것입니다.

만약 나도 똑같은 행동으로 그 잘못을 한다면 결국 내가 내 얼굴에 침을 뱉는 격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늘 나 자신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나도 똑같은 실수를 하며 시험을 받을까 두려워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비판 비난하는 사람은 비판한 내용으로 한정하지만 그러나 비판을 받는 사람은 비판을 듣는 내용보다 훨씬 성장해 간다는 사실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다윗이 충성스런 신하를 전쟁터에 내보내 죽게 만들고 그 아내를 빼앗았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선지자를 보내셔서 곧 바로 죄를 지적치 않고 비유로 죄를 드러내셨습니다.

어떤 한 성의 부자가 아무것도 없고 가난한 자의 양 한 마리 가진 것을 빼앗아 손님을 대접했습니다. 이 말은 들은 다윗은 그것이 자기 이야기인줄 모르고 크게 분노하며 말하기를 여호와의 사심을 가리켜 맹세하노니 이 일을 행한 사람은 마땅히 죽을 자라고 하였습니다. 이처럼 사람은 자기 허물은 보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성경을 통하여 우리 스스로를 볼 수 있게 하셨습니다. 성경은 우리의 내면의 모든 죄를 거울처럼 들쳐 내 보여주고 있습니다.

3.섬김은 서로 짐을 져야 합니다.

여기서 서로 짐을 진다는 말은 그 고통스럽고 무거운 짐들을 사랑으로 나누며 격려하고 돌보고 섬긴다는 의입니다. 모든 인생에게 고통스럽고 무거운 짐들(질병, 의심, 두려움, 불안, 염려)이 걸려 있습니다.

인생의 가장 무거운 죄의 짐입니다. 이 짐을 해결할 자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초청합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마음이 쉼을 얻으리라.”(마11:28)

예수님께 나와 그분의 사랑 용서를 체득해야 합니다. 이것만 잘 무장된다면 그 누구라도 품을 수 있고 그 누구와도 건강한 인간관계를 맺을 수 있습니다. 그것이 그리스도의 법(사랑)을 성취하는 것입니다. 기독교 윤리의 으뜸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는 것입니다.

헬렌처럼 손으로도 듣고 발로도 볼 수 있을 때까지 상대방에게 귀를 기울입시다.

저는 여러분이 깊이 있는 섬김과 감사로 연결된 이웃의 통증을 아우르는 삶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